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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음악

브람스를좋아하세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마니아가 많은 음악가 브람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브람스의 생애

독일 함부르크 출신인 요하네스 브람스는 19세기 후반의 중요한 음악가로 1833년 5월 7일 독일 항구도시인 함부르크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요한 야코프 브람스와 어머니 요하나 헨리카 크리스티아네 브람스로 브람스의 아버지는 호른과 더블베이스 연주자였습니다. 5살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바이올린과 첼로를 배웠으며 7살 때부터는 오토 프리드리히 빌리발트 코셀에게 피아노를 배웠습니다.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 브람스는 에두아르트 마르크스젠에게 본격적으로 작곡법과 음악론을 배웠으며 11살 때부터 작곡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져 브람스는 학교를 중퇴하게 되고 돈을 벌기 위해 술집, 식당, 연회장 등을 다니며 피아노를 연주했고 개인 레슨도 하면서 합창단을 지휘하면서 합창 음악을 편곡하였습니다. 1853년 브람스는 헝가리 출신인 바이올리니시트 요제프 요아힘과 함께 연주여행을 하면서 바이마르에서 프란츠 리스트를 만났고 뒤셀도르프에서 슈만 부부를 만났습니다. 평론가이자 작곡가로 활동 중이었던 슈만은 브람스의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알리고자 평론 '새로운 길'을 발표하여 브람스를 유럽 전역에 알렸습니다. 1857년~1862년에는 함부르크에서 합창단을 지휘하면서 합창곡을 작곡하며 지냈습니다.  1863년에 브람스는 빈에서 음악가 생활을 시작하는데 요한 슈트라우스 2 세를 비롯한 음악인들과 교류하며 수많은 곡을 작곡하였습니다. 1866년에는  어머니의 사망을 추도하는 작품 '독일 레퀴엠'을 작곡하고 1869년에는 '알토 랩소디', 그리고 1871년에는 '승리의 노래'를 작곡하였습니다. 브람스는 1872년부터 1875년까지 빈 음악인 협회장으로 재직했으며 합창단과 관현악단의 정기 연주회를 지휘하였고 20여 년 에 걸쳐 작곡한 '교향곡 제1번'을 1876년에 발표합니다. 그다음 해에 '교향곡 제2번'을 발표하고 1883년에는 '교향곡 제3번' 1885년에는 '교향곡 제4번' 그리고 1890년에는 '피아노 협주곡 제2번' '비극적 서곡' '현악 5 중주곡'등 다양한 작품을 발표하였습니다. 1891년에는 실내악곡을 작곡하고 1897년 4월 3일 브람스는 간암이 악하되어  사망하였습니다. 

 

 

 

브람스의 음악

브람스는 고전주의로 불리우지만 낭만주의의 대표 음악가인 슈만의 제자이면서 고전주의 형식 체계를 기본으로 낭만주의의 정서를 결합해 작품을 만들었는데 당시 낭만주의 음악가들처럼 화려한 작곡 기법을 쓰는 스타일은 아녔습니다. 브람스의 출생 지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북독일의 소박하고 강건한 스타일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드보르작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브람스의 영향을 받은 작곡가입니다. 브람스는 당대 민족주의 음악의 대표 음악가인 바그너와 경쟁관계로 알려져 있는데요. 자세히 알아보면 바그너와 브람스의 나이 차이가 20살이 나고 바그너가 30대에 '방황하는 네덜란드인'과 '탄호이저'의 성공으로 독일을 대표하는 작곡가로 이미 자리를 잡았고 브람스는 40대 이후에 작곡가로서의 확고한 자리를 잡았습니다. 20대 무명이였던 브람스가 슈만의 음악 신보에 바그너, 리스트가 주장하던 신음악을 비판하였고 브람스는 신음악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그너에 대한 브람스의 태도가 일관적이지 않았는데 브람스는 바그너의 악극을 좋아했고 바그너의 악극 공연을 보러다녔가도 합니다. 바그너에게 직접 스코어를 요청하기도 했다고 하니 무엇이 진실인지는 브람스만이 알 수 있겠습니다. 바그너와 브람스의 대결구도는 바그너가 죽고 나서 브람스의 지지자들이 바그너를 추종했던 안톤 브루크너의 음악을 비판했고 브루크너의 수제자인 한스 로트의 교향곡 1번의 초연을 좌절시키고 베토벤상을 받는 거를 가로막았습니다. 

 

 

 

브람스와 클라라 슈만

1853년 9월 30일 브람스의 나이 20살 때 클라라 슈만을 만나게 된 브람스는 클라라 슈만에 대한 마음을 존경이라고 하였지만 '피아노 소나타 작품2번'을 클라라 슈만에게 헌정하였으며 클라라 슈만을 계속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1854년 정신병의 악화로 강에 투신한 슈만이 요양원으로 옮겨지고 이때 브람스는 클라라의 옆에서 클라라를 적극적으로 도왔습니다. 14살 연상의 클라라였지만 브람스는 클라라 슈만에 대한 마음은 더욱 커져갔고 종종 편지를 써서 클라라에게 사랑을 고백하기도 하였지만 클라라 슈만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브람스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으며 64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마음속에 클라라 슈만의 존재는 브람스에게 한결같은 존재였습니다. 1895년 가을 프랑크푸르트에서 뇌졸중으로  클라라 슈만이 쓰러지고 브람스는 '네 개의 엄숙한 노래'를 성경 말씀에 근거에 작곡하였습니다. 클라라 슈만이 세상을 떠나고 나자 "나의 삶의 가장 아름다운 체험이요, 가장 위대한 자산이며 고귀한 의미를 상실했다'라고 브람스는 말했다고 합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드라마를 통해 브람스의 음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을까  궁금해지는데요. 브람스는 대중적으로 베토벤 모차르트에 비해 알려져있지는 않지만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인기가 많은 음악가입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강직한 브람스의 스타일이 한번 빠져들게 되면 더욱 알고 싶어 지는 음악가입니다. 브람스의 곡 중 헝가리 무곡이 가장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작품일 텐데요. 헝가리계 바이올리니스 티인 에두아르드 레메니의 독주회를 본 브람스가 새로운 음악의 문이 열리는 것을 경험하고 음악 여행을 떠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헝가리 무곡'은 음악 여행의 결과물로 헝가리 무곡을 통해 브람스의 음악적 입지가 강화되었다고 하고 지금까지도 브람스 하면 헝가리 무곡을 떠오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헝가리 무곡은 피아노곡으로 유명한데 원래는 4 손을 위한 연탄 곡이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오케스트라 버전으로도 연주되었습니다. 브람스가 직접 헝가리 무곡을 녹음하였다고도 하는데 그만큼 브람스에게 헝가리 무곡은 중요한 곡이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시기에 녹음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도 새롭네요. 브람스가 남긴 헝가리 무곡을 들어보고 싶어 집니다.